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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국보01號) 평도공의 친필(親筆) ⋗燒失‹소실›복원과정-003 곰솔sk     2018-01-30 [13:07] count : 20477

   *003**남대문(국보01) 평도공의 친필(親筆)燒失소실복원과정

   *平度公은 상락군 김묘(金昴)의 셋째딸을 계배로 맞이하여 척약재 문온공 김구용(金九容)의 매부가 되며,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손아래 동생 김사안(金士安)과는 동서지간이 된다
   ▣전라감사전주성을 축조한 경험(經驗)으로 태조7년 한성축조 총책임을 맡고, 현재 서울의 관문인 4개의 大門을 건축했다. 지금도 남대문(國寶01) 상량문에는 平度公의 친필(親筆)이 전해지고 있다.
   ▣1395(태조 4)에 짓기 시작하여 1398(태조 7)에 완성되었고, 1447(세종 29)에 개축하였다. 그러나 19611963년에 있었던 해체, 수리에 의한 조사에서 1479(성종 10)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남대문(南大門)의 상량문(上樑文)은 공의 친필(親筆)로서 1962년 지하철(地下鐵) 1호선 건설을 위해 남대문을 해체(解體작업 중 발견되어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다.]
    *공법(工法)이 능통(能通)하여 성곽축성도감(城廓築城都監도제조(都提調)로 서울 도성과 숭례문을 지었고 당시 숭례문 상량문(上樑文)의 친필이 지금의 국립박물관에 잘 보전되어 있다.

   ***放火방화로 燒失소실복원
   *****20102월 착공식을 거행3년의 복구 공사를 거친 뒤 201354일 복구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공개

   *[남대문]ː(20080210~11고의적인 放火방화燒失소실되어서 현재 복원중復舊日201212월 예정 일

   *復舊上樑복구상량..2012.03.08. 상량문은 서예가 소헌 정도준(64):한지에 2500붓글씨-서예가..유당정현복(1909~1973)

   *숭례문 (서울 崇禮門) 숭례문 복구 기념식 일시201354일 오후 2시 장소 숭례문, 광화문 광장

재발 방지를 위해 설치된 153개의 스프링쿨러 와 4귀퉁이에 소화전 비치, 여러대의 cctv 설비등 보안을 위한 관리동

[문화재청 숭례문 자체복구 비용 147억원 외에 기탁금 75000만원, 신한은행 12억원, 포스코 3억원을 포함한 지원금과 서울시가 부담한 관리동 건립비 92000만원 등이 포함된 것.]

   ▣ 자발적 성금 약 75천만원

   ▣ 신한, 포스크 등 지원금 152천만원

   ▣ 총 복구비용 277억원

   ▣ 복구 현장을 다녀간 일반인 28,000여명

   ▣ 복구 기간 총 1,916(52개월 20)

   ▣ 기능보유자 신응수 대목장,홍창원 단청장,이재순 석장 외 35000명의 연인원 동원

   ▣ 국내산 육송 목재 151,369재료(신응수 대목장)

* 조선시대 때부터 궁궐 공사에 쓰였던 강원도 준경묘(이성계 4대조묘)묘역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

* 국민들이 기증한 목재 1855

* 기존 목재 재활용 6만여재

   ▣ 철물 31종 못을 비롯한 37563(총 무게6.3t)(선인영 대장장)

   ▣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기와 23369장으로 지붕에 이었음(이근복 번와장)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전남 장흥에서 구웠다.

   ▣ 단청작업에 사용한 안료는 121,332kg

   ▣ 경기도 포천 석산의 화강암과 깔돌은 강화도 매음리 산의 박석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왕조를 창업한 정공신(正功臣)의 차훈자(次熏者)에 내린 훈호.
   *조선 태조 4(1395)공신도감에서 진충귀를 개국원종공신에 봉하면서 발급한 기록문서인 녹권이다. 이때 임명된 원종공신 106명에게는 각각 논밭 30()<:참고문 보기>, 노비(奴婢) 3와 함께 부모와 처에게 작위를 내리고, 자손에게는 과거를 보지 않고 벼슬에 오르는 특전을 주고 비를 세워 공로를 기록할 것을 명시. < http://blog.daum.net/dwban22/4225 > 1395(태조 4) 개국공신 52명 외에 1,698명을 개국원종공신으로 책록하고 녹권을 지급하였다. 이렇게 많은 원종공신 중에는 회유·포섭의 대상이 된 고려시대의 관리도 포함되었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이성계의 인척으로 채워졌다. 원종공신 당사자에게는 입비기공(立碑記功)의 영광을 주고 그 부모와 처를 봉작(封爵)하였으며, 자손에게 음직(蔭職)을 주어 벼슬길에 오르도록 하였고, 후손에게도 유죄(宥罪)와 면천(免賤)의 특전을 베풀었다.

농토의 면적 단위. 이 넓이가 농가 일가구에 나누어 주기 위한 면적이었으므로 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서 고려 문종 때까지 1결의 넓이는, 장년 농부의 10()를 기준한 지척(指尺)으로, 사방 640, 정방형으로 15,447.5(5098)가 된다.

고려 문종 때부터는 전토(田土)3등급으로 나누어 옛 1결은 하등전(下等田) 1결이 되고, 중등전(中等田) 1결은 하등전의 9분의 6.25, 상등전 1결은 9분의 4배에 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삼등전 제도는 다시 개혁되어 조선 세종 26(1444)부터는 6등급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1등전 1결의 넓이는 고려 때 하등전 1결의 3분의 2의 넓이로, 그 넓이는 주척 477.5척 사방의 정방형으로 하였다. 따라서 1등전 1결의 넓이는 9,859.7로 변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변하여 인조 12(1634)부터 1등전 1결의 넓이는 10,809가 되었다가 대한제국 광무 6(1902)부터는 111결로 제정하였다. 1등에서 6등으로 갈수록 1결의 면적은 일정한 비율로 넓어진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신라(新羅) 및 고려(高麗)의 양전법(量田法)에 관()하여(박흥수, 도량형과 국악논총, 박흥수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회, 1980)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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