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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평도최유경관력(平度崔有慶官歷)→0062012.02.07.005연결문서* 곰솔sk     2018-01-30 [15:00] count : 11340

   ***0062012.02.07.005연결문서

종묘(宗廟)의 여름 제사[夏享]를 친히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만일 군사를 수고롭게 하여 멀리 사냥하고, 또 신도(新都)에 행차하면, 군마(軍馬)가 더욱 곤()해질 것입니다. 하물며, 풍해도(豐海道)는 중국 사신(使臣)이 왕래하는 땅이니, 춘추(春秋)로 강무(講武)하면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청컨대, 경기(京畿)에서 강무(講武)하고 신도(新都)에서 일을 행하소서. 풍해도에서 강무하는 것은 명년을 기다리소서.”

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대성(臺省)과 형조(刑曹)가 모두 거가를 따르지 말라고 명하였는데,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 등이 굳이 청하여, 거가를 따를 것을 명하였다.

   ➛태종 7, 4(1404 갑신 / 명 영락(永樂) 2) 213(갑신) 2번째기사

최유경(崔有慶)으로 참판사평부사(參判司平府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조휴(趙休)로 사간원 좌사간 대부(司諫院左司諫大夫),이지직(李之直)으로 사헌 집의(司憲執義)를 삼았다.

   ➛태종 7, 4(1404 갑신 / 명 영락(永樂) 2) 32(계묘) 2번째기사

사간원에서 상중에 수가를 청한 대사헌 최유경을 탄핵하다.

사간원에서 대사헌 최유경(崔有慶)을 탄핵하였으니, 유경(有慶)이 복중(服中)에 있으면서 대궐에 나와서 헌사(憲司)의 수가(隨駕)를 청하였기 때문이다.

   ➛태종 7, 4(1404 갑신 / 명 영락(永樂) 2) 515(을묘) 2번째기사

피혐을 어긴 대사헌 최유경을 파직시키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최유경(崔有慶) 등을 파면하였다. 사간원에서 상소하였다.

대사헌 최유경의 아들 사위(士威)가 무진년(戊辰年)에 도관 좌랑(都官佐郞)이 되어 김귀진(金貴珍)의 어미를 잡아다가 조사하여 문안(文案)에 수결(手決)을 두었으니, 유경(有慶)에게 상피(相避)가 되고, 집의(執義) 이지직(李之直)은 사위와 함께 도관 좌랑이 되었고, 장령(掌令) 민설(閔渫)은 신사년(辛巳年)에 도관 겸 의랑(都官兼議郞)이 되어 종천(從賤)의 의논에 참여하였으니, 지금 귀진이 양인(良人)이라고 호소함에 있어 모두 마땅히 회피(回避)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버젓이 이를 청단(聽斷)하여 모두 상피(相避)의 법을 범하였으니,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전월(前月) 27일에 주상께서 지평(持平) 한옹(韓雍)에게 귀진의 종천(從賤)한 까닭을 묻고 집에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고 말씀하기를, ‘마땅히 잘 생각하여 처리하라하시었는데, 지직(之直) 등이 또한 이를 듣고서도 태연하게 제좌(齊坐)하여, 위로는 임금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헌사(憲司)의 직책을 그르쳤으니, 더욱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그러므로, 모두 파면시켰다.

   ➛태종 8, 4(1404 갑신 / 명 영락(永樂) 2) 86(을해) 2번째기사

최유경(崔有慶)으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삼았다

   ➛태종 12, 6(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 726(계축) 3번째기사

공신에게 검교직 부여 금지 등 시무에 관한 사간원의 상소문

사간원에서 상소(上疏)하여 정사를 의논하였다.

   “1. 옛날은 관리로서 직책이 있는 사람이라야 상록(常祿)이 있었습니다. 지금 공신(功臣)과 제군(諸君)에게는 이미 전토와 노비[臧獲]를 하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대로 그 하사를 받게 하였으니, 포상(褒賞)의 은전이 이미 극진한데도 또 상록이 있음은 과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직책이 없는 여러 군()에게는 상록을 불허(不許)하소서. 또 대소의 검교지신(檢校之臣)도 직책이 없이 녹(祿)을 허비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모두 다 정파(停罷)하소서.

   1. 재상(宰相)이란 임금과 천위(天位)를 같이 하여 천직(天職)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임금은 반드시 쓸 만한 인재를 고른 뒤에야 임명하였는데, 오늘날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이숙(李淑)은 어려서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으니, 종친의 예에 두심이 마땅하고,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신극례(辛克禮)도 재주와 덕행이 맞지 아니하므로 훈신의 예()에 두심이 마땅하니, 아울러 재보(宰輔)의 직책은 허락하시지 마소서.

   1. 임금의 일신(一身)은 만화(萬化)의 근원이므로, 동정(動靜)과 위의(威儀)를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정사(政事)를 들으실 때나 예도를 갖추어 행행(行幸)하실 때, 중립(中笠)을 사용하지 마시고 반드시 사모(紗帽)를 사용하시어, 첨시(瞻視)를 높게 하소서.

   1. 각도의 전지(田地)를 개량(改量)할 때, 차견(差遣)된 사람들의 소견이 같지 아니하여, 결부(結卜)의 수가 어떤 것은 평등하고 어떤 것은 과중하여 서민이 원망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신간(新墾)전지이외의 다시 측량한 전지는 우선 전안(前案)에 의거하여 조세를 거두어서 백성의 마음을 편하게 하소서.

   1. 근자에는 천도(遷都)를 한 처음이라 영선(營繕)의 일을 해이하게 할 수 없는 일이나, 전하께서는 외방 백성의 농사에 방해가 됨을 염려하여, 대체로 공작(工作)이 있게 되면, 오로지 부(()의 군사만 역사시켰습니다. 각처의 영선 역시 거의 끝났으나, (()의 사람들은 공역(公役)에 곤고(困苦)하여 사삿일을 볼 겨를이 없으니, 어찌 원망이 없겠습니까? 원컨대, 토목의 역사를 일절 정파(停罷)하고, 또 각도에서 세공 재목(歲貢材木)도 감하여 민력(民力)을 쉬게 하소서.”

또 대제학 권근(權近), 안성군(安城君) 이숙번(李叔蕃), 전 판한성부사 최유경(崔有慶), 전 도관찰사 유관(柳觀)은 정부(政府)에 둘 만하고, 흥녕군(興寧君) 안경공(安景恭), 전 판한성부사 이행(李行), 계림군(雞林君) 이내(李來)는 제조(諸曹)의 우두머리가 될 만하며, 전 판중추원사 정홍(鄭洪), 계림 부윤(雞林府尹) 함부림(咸傅霖), 중군 총제 정구(鄭矩), 계림군(雞林君) 이승상(李升商)은 감사(監司)가 될 만하다고 천거하니, 임금이 상소[]를 보고, 대내에 두고 내려 보내지 아니하였다.

   ➛태종 12, 6(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 93(기미) 2번째기사 임금이 안암동 김식의 집으로 이어하다

안암동(安巖洞) 김식(金軾)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다. 처음에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전백영(全伯英)이 안암동의 이어소(移御所)에다 초가(草家) 31간을 지었는데,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에게 힐문(詰問)하기를, “지금 이어소를 수즙(修葺)하라 한 것은 내가 경기의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함이었다. 오늘날 집을 영조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에게 고하지 않는가?”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신이 어제 명령을 받들고 수리 제조관(修理提調官) 최유경(崔有慶) 등에게 가 보았는데, 최유경이 말하기를, ‘집이 협소하여 조금 더 지어야 되겠다.’고 하기에, 신이 그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에 즉시 아뢰지 못한 것은 실로 신이 잘 잊어버리는 죄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새로 지은 집은 모두 다 헐어버리라. 내일 가서 보고, 만약에 한 간이라도 남아 있으면, 내 이어(移御)하지 않겠다.”하니, 최유경이 왕명을 듣고 두려워하여 모두 헐어버렸다. 육조(六曹)와 대간(臺諫)에서 각 1명씩이 의막(依幕)에서 시위(侍衛)하고, 나머지 각사(各司)는 한 달에 여섯 번씩만 조참(朝參)하고, 삼군 갑사(三軍甲士별시위(別侍衛외패(外牌)의 시위(侍衛)는 평상시와 같이 근무하게 하였다.

   ➛태종 12, 6(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 1115(신미) 2번째기사

요인(妖人) 문가학(文可學)과 그 당여(黨與)를 체포하여 순금사(巡禁司) ()에 가두었다. 참찬의정부사


곰솔sk ***0072012.02.07.006연결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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