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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연결문건(文件) ⋗ 문정공⑦최재*생애*활동 곰솔sk     2018-02-04 [14:19] count : 17869

        문건(文件)들이 많치만 현재지면용량이 너무나 작아서 추리렵니다. [현지면부족분은 다음장 #064 참조바람.]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url=/itkcdb/text/titleListIframe.jsp%3FbizName=MK%26gunchaid=av001%26muncheId=01%26seojiId=kc_mk_m022 목은(牧隱)시고 제10권 시()

      최재(崔宰) 선생의 죽음을 곡()하다. 3(三首)


청고한 가풍은 내력이 구원하고 / 淸苦家風遠 소통하는 정사엔 법도가 있었네 / 疏通典則存

명성은 젊어서 이미 높았거니와 / 名聲少已重 말기운은 늙을수록 온화해졌지 / 詞氣老來溫

추부에서 홀을 되돌리자마자 / 樞府纔還 고향에 내려가 두문불출하였네 / 桑鄕已杜門

돌아보니 천지는 넓기만 한데 / 回頭天地闊 해 떨어져 온 산천이 캄캄하구나 / 日落萬山昏

 

상당엔 아지랑이가 뚝뚝 듣고 / 上黨嵐光滴 완산엔 바다 장기가 엄습하여라 / 完山海氣侵

삶이 있는 건 비록 천명을 믿지만 / 有生雖信命 죽음에 당해선 맘을 편히 가져야지 / 當死要安心

칠십 년 하고도 칠 년을 지났거니 / 七十伊過七 어찌 심상하게 찾아볼 수 있으랴 / 尋常詎可尋

세 가지 달존을 스스로 갖추어 / 達尊三自具 풍채가 유림 가운데 으뜸이었네 / 風采冠儒林

 

말을 타고는 산중엘 들어갔었고 / 騎馬山中去 사람 찾아선 바닷가로 돌아갔으니 / 尋人海上回

광대한 푸른 물결을 임해도 보았고 / 蒼波臨浩瀚 우뚝한 푸른 절벽을 오르기도 했네 / 翠壁陟崔嵬

서로 악수한 건 덧없는 인생의 낙이요 / 握手浮生樂 간장이 꺾이는 건 영결의 슬픔이로다 / 摧肝永訣哀

국도 밖의 아스라한 도로에는 / 遙遙關外路 묵은 자취에 벌써 이끼가 끼었네 / 陳迹已莓苔

 [C-001]최재(崔宰)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전리 판서(典理判書)에 이르고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D-001]소통하는 …… 있었네 : 두보(杜甫)가 두 시어사(竇侍御史)에게 지어준 입주행(入奏行), “정사는 상하를 소통시킴이 법도에 맞았고, 친척은 호귀들과 연결되어 문사와 친하네.[政用疏通合典則 戚聯豪貴耽文儒]” 한 데서 온 말이다.

[D-002]()을 되돌리자마자 : 당 고종(唐高宗)이 무측천(武則天)을 후()로 삼으려 할 때, 저수량(褚遂良)이 극력 간()했으나 듣지 않자, 궁전 섬돌에 홀을 내려놓고 머리를 땅에 찧어 피를 흘리면서 말하기를, “폐하(陛下)께 이 홀을 돌려드립니다.” 하고 그대로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원칙을 굳게 지켜서 벼슬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D-003]세 가지 달존(達尊) : 달존은 천하 사람이 다 같이 높이는 것을 이르는 말로, 세 가지 달존이란 곧 작위[]와 나이[], ()을 가리킨다. 孟子 公孫丑下

     ⓒ 한국고전번역원 임정기 () 2001


      목은문고 제15권 비명(碑銘) 고려국 대광(大匡) 완산군(完山君) () 문진(文眞) [文貞문정] 최공(崔公)의 묘지명 병서(幷序)

------- 공의 이름은 재(), ()는 재지(宰之)이다. 지치(至治) 원년(1321, 충숙왕8)에 동대비원 녹사(東大悲院錄事)에 보임(補任)되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현 () 2002

 국조인물고??崔宰묘지명 󰁶고려국 대광(大匡) 완산군(完山君) () 문진(文眞) [文貞문정] 최공(崔公)의 묘지명 병서(幷序)/안문개(安文凱)이색(李穡)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url=/itkcdb/text/titleListIframe.jsp%3FbizName=MK%26gunchaid=av001%26muncheId=01%26seojiId=kc_mk_m022 <목은집-목은문고 제15>

      완산 최씨(完山崔氏)의 족보 중에서 상고할 만한 이로 순작(純爵)이라는 분이 있는데, 관직이 검교신호위 상장군(檢校神虎衛上將軍)에 이르렀다. 이분이 ()을 낳았으니 관직은 중랑장(中郞將)이요, 중랑장이 남부(南敷)를 낳았으니 관직이 통의대부(通議大夫) 좌우위대장군 지공부사(左右衛大將軍知工部事)에 이르렀다. 공부가 휘() ()을 낳았으니 좌우위 보승 낭장(左右衛保勝郞將)이요, 낭장이 휘 정신(正臣)을 낳았으니 좌우위 중랑장(左右衛中郞將)이다. 중랑장이 휘 득평(得枰)을 낳았는데, 통헌대부(通憲大夫) 선부전서 상호군(選部典書上護軍)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선부(選部)는 청렴과 공정을 신조로 자신을 굳게 지켰으므로 사람들이 경외하며 어렵게 여겼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의 세 임금을 차례로 섬겼는데, 그중에서도 충선왕이 특히 재능을 인정하고 중히 여겼다. 당시에 충선왕이 비록 왕위를 넘겨주기는 하였지만 나라의 정사에는 반드시 참여하였기 때문에, 사대부에 대한 인사 행정이 충선왕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선부가 대간(臺諫)을 맡으면 기강이 확립되었고, 형부(刑部)에 있으면 형벌이 공정하게 시행되었다. 김해(金海)와 상주(尙州)의 목민관으로 나갔을 때는 백성들이 그 은혜를 사모하였고, 전라도(全羅道)를 두 번 안찰(按察)하였을 때에는 백성들이 그 풍도를 두려워하였다. 양전(量田 토지 조사)을 행할 적에 재상(宰相) 채홍철(蔡洪哲)의 부관(副官)이 되어 전라도 주현(州縣)의 토지를 분담해서 처리하였는데,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면서도 백성들이 동요되지 않게 하였다. 향년(享年)75였다.


선부의 부인은 봉익대부(奉翊大夫) 지밀직사사 감찰대부 문한학사승지 세자원빈(知密直司事監察大夫文翰學士承旨世子元賓) 곽공(郭公) 휘 예()의 딸이다. 대덕(大德) 계묘년(1303, 충렬왕29) 4월 계유일에 공을 낳았다.


공의 이름은 재(), ()는 재지(宰之)이다. 지치(至治) 원년(1321, 충숙왕8)에 동대비원 녹사(東大悲院錄事)에 보임(補任)되었다. 태정(泰定) 갑자년(1324, 충숙왕11)에 내시부(內侍府)로 들어갔다가 태정 4년에 산원(散員)에 제수되었으며, 그 이듬해에 별장(別將)으로 옮겼다. 천력(天曆) 경오년(1330, 충혜왕 즉위)에 순흥군(順興君) 안공 문개(安公文凱)와 심악군(深岳君) 이공 담(李公湛)이 공동으로 관장한 과거에서 공이 급제하였는데, 6년이 지난 뒤에 단양부 주부(丹陽府注簿)로 개임(改任)되었고,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중부령(中部令)에 제수되면서 승봉랑(承奉郞)의 품계를 받았다.


얼마 뒤에 지서주사(知瑞州事)가 되었으나 모친상을 당해 부임하지 않았으니, 이는 복제(服制)를 마치기 위함이었다. 이듬해에 충숙왕이 쓸모없는 관원들을 도태시켰다. 이때 어떤 사람이 공을 천거하니, 왕이 이르기를 내가 원래 그의 부친을 알고 있다. 풍헌관(風憲官)[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사헌부의 관리를 가리킴]으로는 이 사람을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고는 즉시 감찰 지평(監察持平)을 제수하였으므로 공이 부득이 취임하였다가, 영릉(永陵 충혜왕(忠惠王))이 복위하자 이에 체직(遞職)되었다.


그러다가 고씨(高氏)의 난이 일어남에 미쳐서는, 무릇 왕이 설치해 놓은 것들을 모조리 뜯어고치려 하면서 도감(都監)을 세우고는 공을 판관(判官)으로 임명하였는데, 공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여 병을 칭탁하고 나가지 않았다. 이에 상부(相府)가 자못 독촉하면서 협박을 가해 오자, 공이 천천히 나가서 도감의 판사(判事)인 재상에게 말하기를 왕이 물론 덕을 잃기는 하였다. 그러나 신하 된 입장에서 임금의 불미스러운 점을 들추어내는 것이 공의 마음에는 편안한가? 왕의 잘못은 왕에게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영합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앞에서는 영합하다가 뒤에 가서 들추어내다니, 나는 이를 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니, 그 재상이 입을 다문 채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명릉(明陵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한 뒤 처음 행한 정사(政事)에서 공에게 전법 정랑(典法正郞)을 제수하였다. 그해 겨울에 흥주(興州)를 다스리러 나가서,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행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또 전적(田籍)이 오래되어 낡았으므로 공이 이를 개수(改修)하였는데, 소장되어 있던 구본(舊本)과 일일이 확인하여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자 듣는 이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인 정승(印政丞) 인당(印璫))이 정권을 잡고 나서는 평소에 공을 꺼렸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교체시켰다.

정해년(1347, 충목왕3)에 정승인 왕공 후(王公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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