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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문정공*文貞公⑱명곡*明谷_최석정✻생애와활동 곰솔sk     2018-02-04 [16:50] count : 7960
敬節公의정부우찬성(右贊成)士康후손_최후상(崔後尙)생부최후량(崔後亮)조부최명길(崔鳴吉)증조부최기남(崔起南)_최창대(崔昌大)

     숙보 56, 41(1715 을미 / 청 강희(康熙) 54) 1111(계묘) 1번째기사 판중추부사 최석정의 졸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최석정(崔錫鼎)이 졸()했다. 최석정은 자()가 여화(汝和)이고, ()가 명곡(明谷)인데, 문충공(文忠公) 최명길(崔鳴吉)의 손자이다. 성품이 청명(淸明)하고 기상(氣像)이 화락(和樂)하고 단아(端雅)했으며,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어려서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를 따라 배웠는데, 이치를 분별하여 깨달아 12세에 이미 주역(周易)에 통달하여 손으로 그려서 도면을 만드니, 세상에서 신동(神童)이라 일컬었다. 구경(九經)과 백가(百家)를 섭렵하여 마치 자기 말을 외듯이 하였는데, 이미 지위가 고귀해지고 늙었으나 오히려 송독(誦讀)을 그치지 않으니, 경술(經術문장(文章언론(言論)과 풍유(風猷)가 일대 명류(名流)의 종주가 되었다. 산수(算數)와 자학(字學)에 이르러서는 은미(隱微)한 것까지 모두 수고하지 않고 신묘하게 해득(解得)하여 자못 경륜가(經綸家)로서 스스로 기약하였다. 열 번이나 태사(台司)1061) 에 올라 당론(黨論)을 타파하여 인재(人才)를 수습하는 데 마음을 두었으며, 대전(大典)을 닦고 밝히는 것을 일삼았다. 신사년1062) 에 세 번 차자를 올려 미움받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이었으니, 조태채(趙泰采)가 매복(枚卜)에서 대신(大臣)의 풍도가 있다고 했다. 소관(小官)에 있을 때부터 임금의 권애(眷愛)가 특별하여 만년까지 쇠하지 않자, 당인(黨人)들이 이를 매우 시기하여 처음에는 경서(經書)를 훼파(毁破)하고 성인을 업신여겼다고 무함하다가 마침내 시병(侍病)하는 데 삼가지 않았다고 구죄(構罪)하니, 하루도 조정에 편안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편안히 지내면서 끝내 기미(幾微)를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의 너그러운 도량에 감복하였다

만년에는 더욱 경외(京外)를 왕래하다가 황야(荒野)에서 죽으니, 식자(識者)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문식이 지나치고 또 경솔하여 절실함이 깊지 못하였다.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도 긴요한 듯하면서 실지로는 범연하여 남구만(南九萬)처럼 독실하고 정확(精確)하지는 못했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며, 태묘(太廟)에 배향(配享)되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40564분류*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1061]태사(台司) : 삼공(三公)을 이름.[1062]신사년 : 1701 숙종 27.


      숙종 46, 34(1708 무자 / 청 강희(康熙) 47) 115(정축) 2번째기사 심준과 최수경 등의 과거를 회복시키다

심준(沈埈)과 최수경(崔守慶) 등의 과거(科擧)를 회복시켰다. 임금이 이 일로써 연신(筵臣)에게 물으니, 최석정(崔錫鼎)은 심준(沈埈)의 시권(試券)을 살피지 못한 이유로써 인구(引咎)하고, 이조 판서(吏曹判書) 조상우(趙相愚)와 좌참찬(左參贊) 강현(姜鋧)은 복과(復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인엽(李寅燁)은 복과(復科)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공조 참판(工曹參判) 민진원(閔鎭遠)은 더욱 힘써 막았다. 대사간(大司諫) 이진수(李震壽)는 명백하게 말하지 않고, 장령(掌令) 양성규(梁聖揆)는 불가하다고 말하였으며, 교리(校理) 정식(鄭栻)은 말하기를,“과연 원왕(冤枉)한 데에 관계되면 복과(復科)하는 것도 불가함이 없으니, 청컨대 전하의 마음에서 결단하소서.”하니, 임금이 마침내 조상우·강현 등의 말을 써서 두 사람이 과거(科擧)를 회복시켰다.태백산사고본】 【영인본40306분류*인사-선발(選拔) / *정론-간쟁(諫諍


      明谷 崔錫鼎의 시문집, 墓誌銘, 墓表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문집명 명곡집 (明谷集)(18C)

간략서지 明谷 崔錫鼎의 시문집. 34171077

간략해제 생전에 저자 자신이 시문을 어느 정도 편집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후 아들 崔昌大와 문인들이 남은 글들을 수집하여 편찬을 시작하였다. 최창대 등이 간행을 위해 목판에 판각을 하던 중 1720(숙종 46, 경종 즉위)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아들 최창대가 사망하였다. 뒤를 이어 慶尙道觀察使로 있던 문인 趙泰億이 간행을 마무리했다. 조태억은 權喜學에게 간행 실무를 맡겨, 이듬해인 1721(경종 즉위) 大邱監營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완성된 목판은 海印寺에 보관하였다. 시들을 저작한 시기에 따라 나누고 題名을 달아 詩錄으로 분류하였다. 詩錄에 저작 시기와 저작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 저자 자신이 주를 붙여 놓았다. 경전 원문에 대한 새로운 고증과 주석에 대한 입장을 보여준 서문, 숙종 대 소론계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편지와 묘도문자, 정치적인 현안에 대한 소론계의 입장을 보여주는 상소 외에 서양 문물에 대한 실용적인 이해를 보여주는 글이나 算學에 대한 관심, 李世龜와 천문역법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편지 등이 주목된다.

   편저자 최석정 (崔錫鼎)

저자개요 16471715 (인조 24숙종 41) : 汝和, : 明谷存窩存所子, 本貫: 全州, : 後尙 母: 李澥

저자내용 조선후기의 정치가, 학자. 초명은 錫萬이다. 생부는 崔惠吉의 아들로 崔鳴吉에게 출계한 崔後亮이다. 최후량이 입양된 뒤 태어난 최명길의 친생자 崔後尙이 아들이 없어 최후상에게 입계하였다. 어려서 南九萬朴世采의 문하에 드나들었다. 1662(현종 3) 監試 초시에, 1666년에는 진사시에 각각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671庭試 병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672設書, 檢閱 등의 직책을 받아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75(숙종 1) 생모 안씨의 상을 마친 뒤 弘文錄都堂錄에 들고 應製2등으로 뽑혔다. 金錫冑 등의 추천으로 병조를 비롯한 각 조의 낭관 및 五道都體察使 許積의 종사관을 지내었다. 1678應旨上疏宋時烈金壽恒을 신구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門外黜送되었다. 1684년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관직에 나서 대사성, 부제학에 올랐다. 1685년에는 노론 언관의 공격을 받던 尹拯을 구하려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가 곧 복귀하여 陳奏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7羅良佐를 변호하고 소론계인 李世龜閔以升을 경학에 밝다하여 추천하였다. 1689己巳換局 이후 1694甲戌換局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하기까지는 仁川, 鎭川 草坪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693년 겨울 생부의 상을 치르고 1696吏曹參判으로 등용된 뒤 吏曹判書에 오르고, 大提學도 겸하였다. 1697년 관제와 세금 제도의 폐단을 아뢰는 時弊 10조목을 올리고 우의정으로 왕세자 冊封奏請使로 다녀왔다. 1699莊陵 改封의 책임을 완수하고 좌의정이 되어 職官, 選擧, 田賦, 軍旅 4조목의 개혁안을 건의하였다. 1700禮記類編》․《輿地勝覽》․《續東文選의 간행을 청하였다. 1701년 처음 영의정에 올랐으나 禧嬪 張氏仁顯王后의 저주한 사건을 조사하면서 장희빈의 죄를 덮어 둘 것을 주장하다가 中途付處되어 풀려났지만 鎭川에 그대로 머물렀다. 1703년 다시 영의정에 등용되었으나 노론 金普澤에게 張希載를 비호했다는 비판을 받고 사직하였다

곰솔sk
◘ [⑳최수경(1668~1726)과거를 회복시킨사유를 홈피에 올린동기...]
⑱명곡∘석정(錫鼎)1646~1715)은 영의정 당시 실록에 수차의 재상회의 결과 힘들게 임금의 재가(裁可)를 받았다.
연유는 추정하건데 ,당사자가 평도공지파∘[지평공]후손으로 조부는 [양도공파]계훈(繼勳)자로 [지평공파]⑮분음∘천건(天健)증손자로 입적(入籍)한 ⑱영세∘永世(1649~1698∘3과등재∘안주목사)의 次孫子로서 생원시∘문과등재 ∘충청도사∘ 詩文集(시문집)12卷 ∘ 墓春川江倉洞이다.
각자의 출생년도에서 일맥상통(一脈相通)하고, 이조판서∘분음∘천건의∘1617년도 유배중 졸하신 역사에대한 한풀이었나싶다.
◘참고로 [분음과 허균]은 한 살 차이의죽마고우(竹馬故友)면서 말년도 두분모두 “할말이 있다”면서 억울한누명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하루차이로 졸하셨다.
허균은 「답최분음서(答崔汾陰書)∘성소부부고 제20여권을 통하여 친분을 밝히고 있다. 귀중하고 방대한 자료라 차후에 분음∘천건편에서 다루고싶지만 평도홈피는 나로서는 작업에 징그럽게 짜증나서 싫다..
2018-02-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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