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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中樞府事崔錫鼎卒記 -곰솔sk 곰솔sk     2021-08-15 [16:37] count : 281

  ▣1 判中樞府事崔錫鼎卒記

癸卯/判中樞事崔錫鼎卒錫鼎字汝和,號明谷,文忠公 鳴吉之孫淸明愷悌,敏悟絶人幼從南九萬朴世采學,刃解氷釋,十二已通,手畫爲圖,世稱神童九經百家,靡不通涉,如誦己言, 旣貴且老,猶誦讀不輟, 經術文章言論風猷, 爲一代名流之宗以至算數字學,隱曲微密, 皆不勞而得妙解,頗以經綸自期十登台司,以破黨論,收人才爲心,以修明大典爲事辛巳三箚, 受疾於己言人所難拔,趙泰采於枚卜,有大臣風自在小官,上眷殊異,晩而不衰,黨人甚忌之, 始以毁經侮聖,誣之,終以侍疾不謹,構之,不得一日安於朝廷,處之晏如,終無幾微見於色,人服其雅度晩益棲屑,卒於荒野,識者恨之然文勝且率爾,不能切深,論治似要而實泛, 不若南九萬之篤實精確焉諡文貞,配享太廟庭

   판중추부사최석정졸기

계묘/판중추사최석정졸석정자여화,호명곡,문충공 명길지손청명개제,민오절인유종남구만박세채학,인해빙석,십이이통,수화위도,세칭신동구경백가,미불통섭,여송기언, 기귀차로,유송독불철, 경술문장언론풍유, 위일대명류지종이지산수자학,은곡미밀, 개불로이득묘해,파이경륜자기십등태사,이파당론,수인재위심,이수명대전위사신사삼차, 수질어기언인소난발,조태채어매복,유대신풍자재소관,상권수이,만이불쇠,당인심기지, 시이훼경모성,무지,종이시질불근,구지,불득일일안어조정,처지안여,종무기미견어색,인복기아도만익서설,졸어황야,식자한지연문승차솔이,불능절심,론치사요이실범,

불약남구만지독실정확언시문정,배향태묘정

[]숙종411715乙未年1111日 癸卯 태백산사고본40564


  【飜譯文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최석정(崔錫鼎)이 졸()했다. 최석정은 자()가 여화(汝和)이고, ()가 명곡(明谷)인데, 문충공(文忠公) 최명길(崔鳴吉)의 손자이다. 성품이 청명(淸明)하고 기상(氣像)이 화락(和樂)하고 단아(端雅)했으며,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어려서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를 따라 배웠는데, 이치를 분별하여 깨달아 12세에 이미 주역(周易)에 통달하여 손으로 그려서 도면을 만드니, 세상에서 신동(神童)이라 일컬었다. 구경(九經)과 백가(百家)를 섭렵하여 마치 자기 말을 외듯이 하였는데, 이미 지위가 고귀해지고 늙었으나 오히려 송독(誦讀)을 그치지 않으니, 경술(經術문장(文章언론(言論)과 풍유(風猷)가 일대 명류(名流)의 종주가 되었다. 산수(算數)와 자학(字學)에 이르러서는 은미(隱微)한 것까지 모두 수고하지 않고 신묘하게 해득(解得)하여 자못 경륜가(經綸家)로서 스스로 기약하였다. 열 번이나 태사(台司)1061) 에 올라 당론(黨論)을 타파하여 인재(人才)를 수습하는 데 마음을 두었으며, 대전(大典)을 닦고 밝히는 것을 일삼았다. 신사년에 세 번 차자를 올려 미움 받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이었으니, 조태채(趙泰采)가 매복(枚卜)에서 대신(大臣)의 풍도가 있다고 했다. 소관(小官)에 있을 때부터 임금의 권애(眷愛)가 특별하여 만년까지 쇠하지 않자, 당인(黨人)들이 이를 매우 시기하여 처음에는 경서(經書)를 훼파(毁破)하고 성인을 업신여겼다고 무함하다가 마침내 시병(侍病)하는 데 삼가지 않았다고 구죄(構罪)하니, 하루도 조정에 편안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편안히 지내면서 끝내 기미(幾微)를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의 너그러운 도량에 감복하였다. 만년에는 더욱 경외(京外)를 왕래하다가 황야(荒野)에서 죽으니, 식자(識者)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문식이 지나치고 또 경솔하여 절실함이 깊지 못하였다.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도 긴요한 듯 하면서 실지로는 범연하여 남구만(南九萬)처럼 독실하고 정확(精確)하지는 못했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며, 태묘(太廟)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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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判中樞府事崔錫鼎卒記

判中樞府事崔錫鼎卒上敎以震悼之極,涕淚沾襟,仍命禮葬等事,卽速擧行錫鼎性傾巧佻淺少有文名,淹博群書,自謂最深於經術,取朱子所編經書,變亂而㧓裂之,以此尤得罪於士論屢登台司, 處事多顚妄,師事南九萬,祖述其言論,放倒名義庚寅以侍藥不謹,被嚴旨,上眷頓衰,自後屛居郊外而卒,年七十後諡文貞

   판중추부사최석정졸기

판중추부사최석정졸상교이진도지극,체루첨금,잉명례장등사,즉속거행석정성경교조천소유문명,엄박군서,자위최심어경술,취주자소편경서,변란이과렬지,이차우득죄어사론루등태사, 처사다전망,사사남구만,조술기언론,방도명의경인이시약불근,피엄지,상권돈쇠,자후병거교외이졸,년칠십후시문정

[]숙종411715乙未年1111日 癸卯 태백산사고본40559


   【飜譯文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최석정(崔錫鼎)이 졸()하였다. 임금이 전교하기를, 지극한 슬픔으로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었다.”하고, 이어 예장(禮葬) 등의 일을 속히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최석정은 성품이 바르지 못하고 공교하며 경솔하고 천박하였으나,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여러 서책을 널리 섭렵했는데, 스스로 경술(經術)에 가장 깊다고 하면서 주자(朱子)가 편집한 경서(經書)를 취하여 변란(變亂)시켜 삭제하였으니, 이로써 더욱 사론(士論)에 죄를 짓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번 태사(台司)에 올랐으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전도되고 망령된 일이 많았으며, 남구만(南九萬)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그의 언론(言論)을 조술(祖述)하여 명분(名分)과 의리(義理)를 함부로 전도시켰다. 경인년에 시약(侍藥)을 삼가지 않았다 하여 엄지(嚴旨)를 받았는데, 임금의 권애(眷愛)가 갑자기 쇠미해져서 그 뒤부터는 교외(郊外)에 물러가 살다가 졸하니, 나이는 70세이다. 뒤에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였다.


    [] 경종291722壬寅730癸丑 증 영의정 남구만·영의정 최석정 등의 시호를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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