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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이야기 전주최씨 - 세계일보 운영자     2015-08-31 [07:21] count : 2475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이야기 전주최씨

전주최씨(全州崔氏)에는 4개 계통이 있는데,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가 그것이다.

이들의 상계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적인 고증이 없어 통일된 시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일부에서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상계에서 갈라진 계통(최군옥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과 최치원 이후에서 갈라진 계통(최순작과 최균을 시조로하는 문열공파와 사도공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계통(최아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에서는 중국 전래설이 거론되는 형편이다. 따라서 전주최씨는 하나의 본관을 사용하고는 있으나 같은 시조의 자손으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주최씨는 조선시대에 상신 3명, 대제학 2명, 청백리 3명, 문과급제자 109명을 배출하였다. 특히 최균의 자손인 사도공파의 인물들이 많다.

전주최씨를 명문가 반열로 일으킨 사람은 태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최유경(崔有慶)을 들 수 있다. 상신·대제학·청백리가 모두 그의 자손에서 나왔다. 대표적 인물은 최명길(崔鳴吉)이 있다. 그는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1등공신으로 대제학과 영의정을 역임했으며, 그의 손자 최석정(崔錫鼎·숙종 때 영의정), 최석항(崔錫恒·경종 때 좌의정) 형제도 정승을 지냈다. 특히 최석정은 당시 소론(少論)의 영수로서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6차례나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또 최군옥의 후손인 문충공파에서는 고려 말기에 ‘두문동(杜門洞 72현’에 들어 있는 최양(崔瀁)이 있다.

그 외에도 고려 말기에 좌참찬을 지낸 최부(崔府), 태종 때의 예문관직제학을 지낸 최덕지(崔德之), 선조 때의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최철견(崔鐵堅)과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최기필(崔琦弼)·최균(崔均)·최경행(崔敬行) 등도 있다.

전주최씨는 2000년 국세조사에서 총 12만2147가구에 39만2548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전체 최씨의 18%를 차지하는 숫자다.

또한 전주최씨에서 분적된 본관들도 다수 존재한다.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하는 강릉최씨, 최호를 시조로 하는 곡강최씨, 최원을 시조로 하는 양천최씨와 양천최씨에서 갈라진 금천최씨, 최한을 시조로 하는 영천최씨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완산최씨, 진산최씨, 초계최씨, 황주최씨, 흥해최씨 등도 전주최씨에서 분적한 본관들이라고 알려진다.



최양선생유허비각. 정몽주의 생질인 만육 최양은 조선 태조와 태종의 연거푸 부름에도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켜 훗날 ‘최고집’의 별칭이 전해지게 한 두문 72현 중의 한 명이다.



전주최씨 4계통의 연혁과 인물

문열공파

전주최씨 문열공파의 시조인 최순작은 조선 초기(태종)에 청백리로 녹선된 평도공 최유경의 7세조이다. 그는 고려 정종 때 벼슬에 나가고 고려 문종 때 중서시랑 평장사가 되었다. 그는 여진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병부상서 겸 신호위 상장군이 되었으며, 완주개국백(完州開國伯)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이로써 그의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의 행적을 기록한 문열공 사적에는 “최순작은 완산 사람으로 신라시대 3최의 하나이면서 고려 초기에 평장사를 지낸 완산백 최언위의 후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경주최씨였던 최언위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최언위로부터 최순작까지의 계보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의 아들 최숭은 이부시랑에, 최공은 개성소윤에 올랐다.

문열공파는 다시 안렴사공파, 중랑장공파, 별장공파, 좌윤공파, 판윤공파, 양도공파, 경절공파, 검추공파, 감무공파 등으로 갈라진다. 그 후손으로는 고려 의종과 문종 때 공부상서와 수문전태학 겸 대장군을 역임한 최남부(崔南敷), 청백리 최유경과 그의 조부인 선부전서를 지낸 최득평이며, 아버지는 감찰대부를 지낸 문정공 최재(崔宰)가 있다.

특히 최유경의 집안은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크게 흥해 그의 아들들이 모두 큰 벼슬을 지냈다. 한성부판윤을 지낸 최사위(崔士威), 청백리에 녹선되고 판돈령부사를 지낸 최사의(崔士儀), 사헌부 지평을 지낸 최사규, 우찬성을 지낸 최사강(崔士康), 첨중추원사를 지낸 최사용(崔士庸), 그리고 막내인 최사흥이 있다.

넷째인 최사강은 3남4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좌참찬을 지낸 최승녕이고, 차남은 군수를 지낸 최승정, 그리고 막내는 첨정을 지낸 최승종이다. 그의 딸들도 태종의 서자인 성녕군 이인과 혼인하고, 세종의 6남인 금성대군 이유와 혼인하였다. 또 장남 최승녕의 딸은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과 혼인하였고, 증손녀가 예종의 후궁이었던 공빈최씨이다.

그리고 최유경·최사강의 직계 후손들은 인조반정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청나라와 화해할 것을 주장하던 주화론의 대표주자인 문충공 최명길(영의정)이 최사강의 7대손이다. 또한 최명길의 손자로는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과 좌의정을 지낸 최석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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